제1편 제3장 제1절 가치척도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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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의 내면에 감춰진 본질


로마의 황제 네로시절에 동전 한개에는 1g의 금이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날 네로는 꼼수를 부리게 되어  10%의 금을 줄이기로 하고 동전 한개에 0.9g의 금을 넣게 했다.


동전 한개를 받고 생선 10마리를 건네주던 상인은 가만히 앉아서 생선 1마리를 도둑맞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황제정치시대의 일화이므로 그냥 힘 있는놈이 제 맘대로 그렇게 정한것이라는 말이다. 설령 진실을 안다해도 황제가 그리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끝이라는것.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 네로같은 짓을 한다면 사람들이 가만 있을까?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는다. 자본주의라고 하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연상한다. "자유"가 있으니 무슨 일이든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민주주의"도 있으므로 독재는 없을 것이라 믿고 산다. 독재는 정치적 독재뿐 아니라 경제적 독재도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 있어서 독재는 자행된다.


강원랜드에 돈을 싸들고 찾아가는 노름꾼이 자유민주주의인 대한민국 정부에서 허가를 해준 곳에서 사기를 치겠는가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넌센스다. 그런데도 "합법"이라는 단어에 속아서 마치 정당하고 착한 노름판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상품과 상품의 교환을 위해서는 비율이 정해져야 하는데 그 비율은 두 상품 사이의 "관계"에 의해 몇대 몇으로 바꿀건지 정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물물교환이 아니므로 상품이 아닌 화폐와 화폐를 바꾸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커피농사를 짓는다. 커피가게 주인은 나로부터 커피를 구입해서 손님들에게 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의 생필품을 구입한다. [원두커피-> 1잔의 커피->생필품] 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화폐"다.


그런데 상품은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사람의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화폐가 이사람 주머니에서 저사람 주머니로 옮겨다니는 진짜 모습은 실은 상품이 옮겨다니는것의 겉모습일뿐이다. 이제 상품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것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수 있을까?


상품 안에 담겨진 진짜 모습은 바로 인간의 노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자동차가 타기 위한 것이라고? 커피는 마시기 위한 것이라고? 아니다. 우리가 명칭을 정해놓고 말하는 "자동차"나 "커피"의 진짜 모습은 자본주의시스템에서는 타는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물품의 이름은 그 물품의 성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1달러를 찍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비례하는 금이 중앙은행에 있어야만 했다. 그것을 '금본위제'金本位制라고 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제도가 없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던 미국 정부가 금이 없어도 종이돈을 찍어낼 수 있도록 자신들 마음대로 폐지해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1달러가 도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화폐의 진짜모습은 "상품"

상품의 진짜모습은 "노동"


그런데 이 실체들은 {교환}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혼란스럽게 됐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교환의 속성은  네로와 전혀 다를것이 없기 때문이다.



관념인가 유물인가, 철학의 근본문제


철학이란 자연의 이치와 사람들, 그리고 사회의 원리 또는 진짜 모습을 탐구하는 과학의 학문이다. 철학에서는 '근본문제'라는 것이 영원한 숙제인데, 머릿속의 '의식'이 우선인가 몸으로 체험하는 '경험'이 우선인가의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수많은 신들을 모셨다. 이 세상은 신神이 만들었으며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믿게 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만가지 잡신을 믿는 것에서 조금 더 발전하기는 했지만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는 이데아(Idea: 아이디어) 사상을 논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따르는 '이성'과 '윤리'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러한 것들은 어떤 "절대적인" 힘이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과학적 진리 탐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논리학>의 원조이기도 한데 의문을 하나씩 해소해 나가며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 논리학이다.


인간의 생각 자체에 어떤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관념론】

명확하게 경험하는 환경에 의해 생각이 만들어진다고 하는 【유물론】



이 두 가지가 바로 철학의 영원한 숙제인 "근본문제"다.


그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과학(요즘 말하는 자연과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을 꽃피우게 된다. 현재도 서양인들이 원조로 삼는 문화의 발원지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인것이다. 


하지만 중세를 맞아 철학(즉 과학)은 암흑기를 맞게 되는데 무조건 신의 뜻인 세상이 된것입니다. 중세의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고대 그리스의 빛나는 철학을 찾자는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Renaissance)이며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적 문화를 다시 부흥시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돈(화폐)이나 상품은 본래 그 안에 담겨진 인간의 노동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즉 화폐와 상품의 본질은 인간노동 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상품이 자본주의적으로 쓰이려면 본래의 색깔을 지워야 한다.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가치"는 벗어던지고 상품의 가치가 화폐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가짜 옷을 입어야 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 = 노동] 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것처럼 처음부터 [상품 = 화폐] 였노라고 선언하며 무조건 믿으라는 "관념"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뿌리 깊이 박아버렸다. 그러므로 관념이냐 유물이냐 하는 문제는 단지 철학자들이 연구실이나 강의실에 앉아 고민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아서 숨쉬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화폐는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가 있다. 월급날이 되면 계좌에 월급이 들어온다. 모두들 이렇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돈이 들어오는 경우는 없고, 단지 인터넷뱅킹이나 CD기에서 조회해보면 숫자가 찍혀있을 뿐이다.


월급이 찍힌것을 확인한 노동자나 그 배우자는 어딘가에 납부해야 할 액수를 보낸다.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요금, 대출이자, 차 할부금, 자녀 학원비, 사적 보험료, 휴대폰요금, 카드대금, 등을 계좌이체 하기도 하고 자동이체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월급이 지급되고 그 돈으로 가계에 필요한 지출을 하는 순환과정에서 실제로 눈에 보이는 돈(화폐)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실제로 돈이 흐른것처럼 생각한다. 왜 그럴까?그렇게 믿도록 최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기 위해 단순한 도식을 가정해보겠다.


  1. 이 사회에 회사는 A라는 대기업 하나뿐이다.
  2. 모든 노동자는  A 기업에만 다니고 있다.
  3. 월급날 A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은 노동자는 A기업의 자동차 할부금을 낸다. 또한 A기업의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나간다. A기업의 휴대폰 할부금도 낸다. A기업의 통신요금을 납부한다. A기업의 주유소에서 연료를 넣으면서 A기업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4. 받은 월급을 이와 같이 지출하고 났더니 남는 돈은 마이너스(-) 다. 


결론을 말하자면, 월급날 A기업의 계좌에서 실제로 흘러나온 돈은 없다. 숫자상으로만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만 그조차도 몇일 지나지 않아서 A기업의 계좌에 도로 채워진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우리는 무슨 이유로 나가서 노동을 하는 것일까?


길에서 야바위꾼이 여러개의 잔을 엎어놓고 한개의 잔에만 주사위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현란하게 손이 좌우로 움직이며 잔들의 위치를 바꾼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 결과 그가 권하는 연습게임에서는 정확히 주사위가 들어있는 잔을 알아 맞춘다. 하지만 돈을 걸고 본게임에 돌입하면 지목한 잔 속에 주사위가 있는 법은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화폐"의 기능이다. 


모두가 돈을 좇아 하루하루 노동을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니 그것은 신기루다.




결국 신기루를 위해서 모두 죽도록 일 한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 과정에서 이익을 크게 챙겼다.

이렇게 해서 그 누군가와 노동자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분화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오늘도 노동자 계급은 열심히 노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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